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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저... 그러니까...

요새 일이 좀 늘어난 기분이 들어. 원래 바쁠 때는 엄청 바쁘고 잠깐 여유가 있을 때는 그 정도의 여유 정도는 있었는데 세상이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만큼 나에게로 몰려오는 일이 부쩍 늘어난 거겠지. 요 근래 늘어나는 초능력자의 수와 그들의 폭주. 그리고 그걸 감당할 수 있는 건, 정부가 들고 있는 유일한 패인... '나'니깐. 고분고분 그들의 손에 놀아날 수 있는 귀여운 사냥개, 또는 시한폭탄. 이곳에서의 나의 입지는 이 한 문장으로 설명이 됐다. 그래도 그렇지 일을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몰아주면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 걸까. 골고루 전력을 키워서 힘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아둔하게 나에게 기대기만 해서야 원. 뭐, 나야 나중에 이 상황을 써먹기는 쉽겠지만. 자신의 자리에 앉아 규칙적으로 손가락을 탁탁 두드리며 가만히 모니터를 들여보고 있으니 저절로 생각이 흘러내렸다. 원래 가끔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야 3일 밤낮으로 밖을 돌아다니고, 자료를 모으고 보고서를 몇 장을 써댔으면 휴식도 필요할만했다. 이따가 잠시 집에 들러서 두고 온 서류를 찾는 겸 사랑스러운 그와 점심 식사나 할까. 아 기대된다. 시간이 맞으면 좋을 텐데. 책상 위에 배치된 작은 거울을 집어 들고 자신의 용모를 확인한다. 좀 꼬질꼬질한 거 같기도 하고... 씻고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지금 시간에는 샤워실에서 직장동료랑 마주칠 수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좀 그렇겠지. 사실 마주한다고 해서 큰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워낙 외형이 튀다 보니 샤워실에서 이목이 집중될게 뻔해 괜히 그런 상황을 피하게 된다. 

 

어쩔 수 없지. 그럼 가서 씻을까.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어둔 코트를 집어 들고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

.

.

 

"팀... 팀장님!"

 

오늘 점심은 좀 맛있는 걸 먹으러 갈까 고민하면 복도를 걷고 있으니 누군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얼마 전에 우리 팀에 들어온 신입 앤디였다. 나를 무서워하는 눈치여서 사적으로 부르는 일은 거의 없으니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겠지. 나는 말을 꺼내는 대신 슬며시 웃으며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봤다. 

 

"음... 어... 그러니까... 회의실에 지금... 그..."

 

무슨 큰일이라도 난 걸까. 아니. 아마 아닐 것이다. 아마 이 신입도 그저 내가 무서운 거겠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별말 없이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그가 다 말을 이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이곳에서 2년을 함께 지낸 동료들도 나를 껄끄러워하는데 너는 오죽할까.

 

"... 아는 분이 와 계시다고. 그... 서류... 때문에..."

 

그런데 팀장님께 지인이 있으셨나요? 마치 그리 시선으로 묻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야 이상한 일이지 2년 동안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공적인 관계 외에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딱 한 사람 생각나는 이가 있었다.

 

클린트.

 

나는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빠르게 걸음을 옮겨 신입을 지나쳤다.

 

에이, 설마.

 

아닐거야.

 

아니었으면 좋겠어.

 

 

 


 

 

 

 

왜 항상 바라지 않는 것들은 쉽게 현실이 되는 걸까. 너무 급하게 뛰어오면 시선이 집중될게 뻔해서 최대한 빠르지만, 그렇게 급해 보이지 않는 걸음걸이로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이 회의실로 오기 전까지 많은 걸 해결해야 했다. 산엄한 분위기로 클린트를 지키고 있을 인력들을 후퇴시키고, 오해를 풀어야 했다. 평소에는 잘 부탁하진 않지만 이런 일은 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일처리가 빨랐다. 물론 빠르다고 해도 몇 정거장을 현장에  지령이 전달됨으로, 결론적으로 꽤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마음은 애타 죽겠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는 걸 알려주는 듯 젖혀진 문이 벽에 가볍게 툭. 맞고 가볍게 튕겨졌다. 왜 당신이 여기 있는 거죠?

 

"클린트?"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무표정했던 얼굴의 경직이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사르르륵 풀려버린다. 왜 여기에. 아니 여기에 당신이? 그것도 연락도 없이. 아닌가? 혹시 내가 연락을 못 받은 걸까?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얼굴을 그대로 멀뚱히 앉아있는 클린트에게 내 비쳐 보이며 문을 닫았다. 말이 급하게 나오려는 걸 한번 참고는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진정해. 이런 일도 생길 수 있는 거잖아. 원래 삶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진 않으니까.

 

"앤디에게 들었어요. 서류 때문에 일부러 와줬다고. 제가 괜한 고생을..."

 

아, 이곳에 그가 발을 들이는 건 최대한 피하고 싶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일단 그는 경찰을 싫어하고, 거기에 자신이 불편한 취급을 받는다는 걸 눈치 빠른 그러면 조금만 있어도 알아차릴 게 뻔했다. 싫어하는 게 싫어하는 짓을 한다면 그게 얼마나 역효과가 나는지 안 봐도 눈에 훤했다. 그리고... 아마 여기에 들어섰을 때부터 환대받지는 못했으리라. 그야 나를 찾아온 사람은 2년 동안 한두 명 정도였으니까. 분명히 수상하다고 여겨져서 여기 빼 둔 거겠지. 괜히 미안한 마음이 앞서서 조심스레 클린트에게 다가섰다가 순간 멈칫 멈춰 섰다.

 

"..."

 

"?"

 

아, 맞다.

나 3일은 못 씻었지.

 

"... 저어... 클린트.... 음... 그러니까..."

 

"?"

 

평소답지 못하게 머뭇거리며 시선을 똑바로 맞추지 못하자 클린트는 의아한 듯 나를 바라봤다. 비록 이런 곳에서 3일 만에 만났지만 기쁜 건 사실은 데 영 마음 같지가 않았다. 그야 그렇지. 이렇게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그를 봐야 하는데 내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그냥 씻을걸. 어제 제모해서 조금 자라 버린 턱수염을 괜히 손으로 만지작 거리다가 흘긋 시선을 맞췄다.

 

"... 와줘서 고마워요. 제가 서류를 잘 챙겨 왔어야 했는데 덕분에 수고를 덜었네요."

 

"... 그런 와중에 미안하지만... 우리 2시간 뒤에 다시 당신 집 앞에서 봐도 될까요? 그러니까... 당신이 싫은 게 아니라... 그..."

 

아, 부끄러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데. 차마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며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좀... 씻을 필요가 있어서요..."

 

"... 그러니 2시간 뒤에 저랑... 맛있는 점심 먹어요...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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